족보
  • 김정운(金鼎運)
  • 경주김씨(慶州金氏),  출생~사망 : 1677 ~ 1735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신보(信甫). 호는 염암(念庵). 문정공(文貞公) 송애(松崖) 김경여(金慶餘)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청주진병마첨절제사(淸州鎭兵馬僉節制使)를 지낸 통훈대부(通訓大夫) 김창석(金昌錫)이고, 생부는 청주목사(淸州牧使) 김명석(金明錫)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학문에 뜻을 두었는데, 성리학(性理學)은 물론 천문, 지리, 의약, 복서(卜筮)에도 정통하였다. 1710년(숙종 36) 경인증광사마시(庚寅增廣司馬試)에 진사(進士) 2등으로 합격하였다. 호조정랑(戶曹正郞)을 거쳐 합천군수(陜川郡守)로 재임하던 중 1721년(경종 1) 장인인 이이명(李○命)이 김일경(金一鏡), 목호룡(睦虎龍) 등의 무고로 화를 당하자, 이에 연루되어 해직되고 합천의 촌사(村舍)에 억류되었다. 이인좌(李麟佐)의 난 때 반란군이 합천, 삼가(三嘉) 등지를 장악하자 의병을 모아 난을 진압하는데 공을 세웠다. 정조(正祖) 때이 사실이 알려져 무신충훈(戊申忠勳)에 수록되고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추증되었다. 1735년(영조 11) 사망하였으며 묘는 대덕군 산내면 금동리, 지금의 대전 중구 금동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