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시정(時靜). 호는 정재(定齋). 아버지는 사성 지번(之藩)이며, 의병장 재우(再祐)는 아들이다. 1546년(명종 1)에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556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그뒤 승문원정자, 영천군수를 지내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1572년(선조 2)에 다시 관직에 복귀하여 지평, 이듬해 장령, 그 이듬해 사간, 1576년에는 의주목사, 그뒤 호조참의를 거쳐 1578년에는 동지사(冬至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 이듬해 황해도관찰사에 제수되었으나 사직하고 부임하지 않았다. 1581년에 제주목사가 되었으며, 1585년에 남원부사로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그는 무재(武才)를 겸비하여 국가에 위급한 일이 있으면 큰일을 맡길만하다 여겼는데,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그의 아들 재우가 의령에서 일어나 왜를 쳐서 큰 공을 세우니 사람들이 아버지의 기품을 닮았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