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시백(施伯). 호는 만사(○沙).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성의 아들이다. 1612년(광해군 4) 정주목사(定州牧使)가 되었으나 다음해 선조의 유교(遺敎)를 받은 신하들이 배척될 때 아버지가 유배당하자 벼슬을 버리고 10년간 은거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다시 기용되어 1625년(인조 3) 예조참의, 승지 등을 지냈다. 이듬해 대사간이 되고 1627년의 정묘호란 때는 강화도로 왕을 호종하였고, 1630년 좌승지를 거쳐 다시 대사간, 대사헌, 경기감사, 대사성, 도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1643년 형조판서로서 성절 겸 진하사(聖節兼進賀使)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다. 이듬해 우의정에 승진하였고,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병으로 1645년 은퇴할 것을 청원하여 판중추부사의 한직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