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이원진(李元鎭)
  • 여주이씨(驪州李氏),  출생~사망 : 1594 ~ 1665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승경(昇卿). 호는 태호(太湖). 판서 지완(志完)의 아들이다. 1615년(광해군 7) 생원으로서 대북의 폐모론에 반대하다가 영의정 이원익(李元翼) 등과 함께 귀양갔다가 인조반정 후에 풀려났다. 1630년(인조 8)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지평, 교리, 부수찬, 장령, 집의(執義) 등을 거쳐 1647년 승지에 올랐다. 1644년 교리로 있을 때 두만강의 국경을 넘어 경흥, 경원, 온성 등지에 침입하여 횡포를 자행하던 여진인에 대하여 조정의 명으로 그 선후책을 강구하였다. 또, 1648년에는 왕명으로 별시문과에서 초시를 파하려 하자, 그 부당성을 강력히 아뢰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효종 때 동래부사, 제주목사 등을 역임하였다. 제주목사로 있을 때에는 남만인(南蠻人)30여명이 제주에 표류해 오자 이들을 서울로 압송하였다. 현종초에는 병조참의, 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탐라지 耽羅志'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