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순부(純夫). 호는 모계(茅溪). 통정대부(通政大夫) 산두(山斗)의 아들이다. 거창(居昌) 출신으로 조식(曺植), 오건(吳健), 정구(鄭逑)의 문인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거창에서 의병들을 모집하고, 의병장 김면(金沔)과 함께 고령(高靈)에서 왜군을 맞아 싸웠다. 김면이 싸움중에 병으로 죽자 뒷일을 맡아 처리하였다. 또한, 부모의 상을 당하자 고향인 거창현 모계리(茅溪里)에 터전을 마련하고, 10여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이와같은 독행(篤行)으로 부제학(副提學) 김우옹(金宇○), 영의정 유성룡(柳成龍)에게 천거되어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임명되었다. 그뒤 선공감주부(繕工監主簿), 사헌부감찰을 지냈다. 선조가 죽고 광해군이 즉위하자 사직하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정인홍(鄭仁弘)과는 같은 조식의 문인으로 구면이었으나, 그가 대북(大北)의 집권자가 되자, 관계를 끊고 두문불출 독서에 전념하였다. 1623년(광해군 15) 인조반정 후 70세의 나이로 고령현감에 부임하였으나, 수개월 뒤 병으로 사임하였다. 거창의 용원서원(龍元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에 '모계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