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순보(舜甫). 호는 정헌(靜軒). 아버지는 대사헌 덕함(德○), 부인은 이조판서 이귀(李貴)의 딸이다. 1615년(광해군 7)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1623년(인조 1)에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듬해 검열, 대교를 거쳐 1625년 지평, 1627년 수찬이 되었다. 같은해, 반정공신인 김류(金○)와 이귀의 대립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인천 유생 김원(金垣)이 김류 부자의 횡포를 비난하는 상소를 올리자 이귀의 사위로서 그 상소의 배후인물로 지목되어 온성으로 유배당했다. 1629년 해남으로 옮겼다가 이듬해 사면되었다. 1648년 김류가 죽은 다음 고산찰방(高山察訪)에 기용되었으나 요직에는 나가지 못하고 예빈시정에 그쳤다. 1722년(경종 2) 경연관(經筵官) 이진유(李眞儒)에 의해서 어전에서 원통함이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