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성지(聖止), 성지(聖之), 지숙(止叔). 호는 현암(玄巖), 현석(玄石) 증조부는 최경(崔瓊)이고, 조부는 최여림(崔汝霖)이며, 아버지는 최준(崔濬)이다. 어머니는 이원근(李元謹)의 딸이고, 부인은 정종명(鄭宗溟)의 딸이다. 1621년(광해군 13) 신유별시에 장원으로 합격하였으며, 1623년(인조 1) 계해개시문과(癸亥改試文科)에 갑과(甲科) 2등으로 급제하여 다음해 주서(注書)가 되고, 지평(持平), 부승지(副承旨)를 거쳐 승지(承旨)에 이르렀다. 효심이 극진하여 1638년에는 모친의 병을 이유로 체직(遞職)을 청하였다. 1644년(인조 22) 도교(道敎) 부흥에 대한 상소를 올리고 소격서(昭格署)의 복치(復置)를 주장하여 사간원(司諫院)이 그의 삭탈관직을 건의하는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학문이 뛰어났으며 저서로는 1675년(숙종 1)에 간행된 '현암고(玄巖稿)'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