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송상인(宋象仁)
  • 여산송씨(礪山宋氏),  출생~사망 : 1569 ~ 1631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성구(聖求). 호는 서곽(西郭). 아버지는 현감 복흥(復興)이며, 부사 상현(象賢)의 아우이다. 1605년(선조 38)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성균관학유, 예문관검열을 거쳐 함경도북평사(咸鏡道北評事)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 형조좌랑이 되었다. 1612년(광해군 4) 김직재(金直哉)의 무옥(誣獄)에 연루되어 10년 동안 제주도에 위리안치되었다. 인조반정으로 소환되어 성균관직강에 오르고 이어 지평이 되었다. 그 이듬해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관서 지방에 어사로 나가 선유(宣諭)하였다. 그뒤 성균관의 사예, 사성, 사헌부의 장령과 집의, 홍문관교리, 사도시정(司○寺正), 사복시정(司僕寺正)을 역임하다가 안동부사로 전보되었으나 그곳에서 민정을 숙정(肅正)하고는 사임하였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어사로서 충청도에서 조운(漕運)을 감독, 세공의 조달에 힘썼고 돌아와서는 사헌부집의, 종부시정(宗簿寺正)을 거쳐 외직으로 남원부사가 되었다. 부사 재임시에는 작폐를 일삼던 도적을 소탕하자 어사가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추천, 임명하였으나 사고로 사퇴하였다. 1629년에 다시 전라도관찰사에 특임되었으나, 또 모함으로 물러났다. 그뒤 병조참지, 예조참의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사퇴하였다. 성품이 강직하고 청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