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최동언(崔東彦)
  • 경주최씨(慶州崔氏),  출생~사망 : 1594 ~ ?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성구(聖求), 민중(敏仲). 호는 백사(白沙). 조부는 최준문(崔濬文)이고, 부친은 어모장군(禦侮將軍) 최계종(崔繼宗)이다. 어려서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문하에서 글을 배웠다. 1613년(광해군 5) 계축증광사마시(癸丑增廣司馬試)에 진사(進士) 3등으로 합격하여 1633년(인조 11)에 천거로 목릉창봉(穆陵參奉)에 제수되었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남한산성(南漢山城)에서 임금을 모셨고, 1639년(인조 17)에 구례현감(求禮縣監)에 임명되었다. 벼슬이 바뀌어 귀향하니, 늠전(○田)으로 남은 돈이 일 천 꿰미가 되었으나, 자신이 가지지 않고 아전에게 주고 돌아왔다. 그런데 아전도 또한 사양한 후 몇 년이 지난 뒤 그 수(數)만큼 환납(環納)하고 말았다. 이에이 돈을 서악서원에 납부하고 토전(土田)을 입매하여 향례를 도왔다. 마침 사액(賜額)의 소를 올려 윤허를 받았다. '봉선의범(奉先儀範)'을 지어 후손에게 몰러주면서 받들어 지키도록 하였고, 육의당(六宜堂)에 긍구재(肯構齋)와 퇴수재(退修齋)의 현액을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