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선여(善餘). 감찰 제(悌)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이소(李昭)의 딸이다. 1599년(선조 32)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그해 검열에 등용되고, 1603년 경연청전경(經筵廳典經)을 거쳐, 설경(說經)이 되어 경연의 사무를 처리하였다. 이듬해에 사간이 되고, 대사간 허성(許筬)과 함께 임진왜란 때 공훈을 세운 공신들에 대한 녹훈을 공정히 할 것을 상소하였다. 이어 홍문관부수찬을 거쳐 수찬이 되었다. 뒤에 헌납(獻納)으로 전보되었다가 1605년 이조좌랑을 거쳐 이조정랑이 되었다. 같은해 말 지평이 되었을 때 익명서사건을 해결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사퇴할 것을 청하였으나 왕의 만류로 유임되었다. 1607년 교리가 되었으나, 1610년(광해군 2) 유영경사건(柳永慶事件)에 연루되어 관작을 삭탈당하고 생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