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선계(善繼). 호는 청호(聽湖). 좌참찬 사수(士秀)의 손자로, 지(摯)의 아들이다. 1582년(선조 15) 생원시에 합격하고, 1590년 증광별시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92년 예문관봉교 겸 춘추관기사관이 되어 '명종실록' 찬수에 참여하였다. 그해 임진왜란이 일어나 선조가 평양으로 몽진하자 왕을 호종하였으나, 왕이 평양을 떠나 의주로 간다는 말을 전해듣고 동료 네 사람과 밀의하여 사초(史草)를 불태우고 그곳에서 탈출하였다. 환도 후 그 죄과로 인하여 예문관검열직에서 파직당하였다. 그뒤 1599년 예문관대교에 복직되었고, 1604년 선천군수로 재직시에 평안감사 로부터 포상대상자로 상신되었다. 2년 후 성균관사예를 거쳐, 1609년(광해군 1) 이이첨(李爾瞻)의 그늘에서 한성부우윤, 동지의금부사, 오위도총부부총관, 장례원행판결사를 지냈으며, 1618년에는 공조참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