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사휘(士輝). 호는 설애(雪厓). 생부는 이화(以和)이며, 이순(以順)에게 입양되었다. 진사로서 1606년(선조 39)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1608년(광해군 즉위년)에 검열에 오르고 '선조실록' 편찬 때 기사관(記事官)으로 참여하였다. 1610년 세자시강원사서, 1611년 정언, 수찬에 이어 그 이듬해에 해운판관이 되었다. 1613년 부안현감으로 있다가 사헌부의 탄핵으로 파직되었다. 1614년에 성균관직강에 복직되고 그 이듬해 동지사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와서 사예가 되고, 그뒤 검상, 장령, 수찬, 필선 등을 역임하였다. 1623년(인조 1)에 그의 아들 세륭(世隆)이 역신 이괄(李适)의 사위인 까닭에 유배되었다가 적소에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