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사호(士浩). 호는 목계(木溪). 아버지는 인범(仁範)이며,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이다. 1484년(성종 14) 생원시에 장원하고, 1486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호당(湖堂)에 들어가 사가독서 함으로써 문명을 떨쳤다.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김종직의 문인이라 하여 장류(杖流)되었다가 얼마 뒤 풀려났다. 그뒤 연산군에게 문장과 시로써 아부하여 그 총애를 받고 도승지에 올랐다. 1506년 중종반정을 주동하던 박원종(朴元宗) 등이 죽이려 하였으나, 영의정 유순(柳洵)의 주선으로 반정군에 나가 목숨을 빌고 반정에 가담하여, 그 공으로 병충분의정국공신(秉忠奮義靖國功臣) 3등에 책록되고 진천군(晉川君)에 봉해졌다. 그뒤 대제학, 공조판서를 거쳐 1512년(중종 7) 한성부판윤이 되고, 이어 숭록대부에 올라 우찬성, 판중추부사 에까지 이르렀다. 시문에 뛰어나 김일손(金馹孫)에 버금갈 정도로 당대에 이름을 떨쳤다. 그러나 명리를 지나치게 탐낸데다 특히 연산군 말년 애희(愛姬)의 죽음을 슬퍼한 왕을 대신하여 궁인애사(宮人哀詞)와 제문을 지은 뒤 사림으로부터 질타의 대상이 되었고, 반정 후에도 이윤(李胤) 으로부터 폐조의 행신(倖臣)이라는 탄핵을 받았다. 저서로 '목계집'이 있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