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김가기(金可幾)
  • 경주김씨(慶州金氏),  출생~사망 : 1537 ~ 1597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사원(士元). 호는 일구당(一丘堂). 부사직(副司直) 김벽(金碧)의 손자로, 아버지는 김제군수(金堤郡守)를 지낸 통훈대부(通訓大夫) 김천우(金天宇)이다. 스승 성운(成運)이 아들이 없어 조카사위인 그를 후사로 삼았다. 1579년(선조 12) 기묘식년사마시(己卯式年司馬試) 생원(生員) 1등에 합격하여 노성현감(魯城縣監)을 지냈다. 그 후 성운의 문집 편찬에 몰두하던 중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마을에 침입한 왜적과 맞서 대항하다가 순절하였다. 당시 부인 전주유씨(全州柳氏)는 남편을 구하려다 순절하였고, 며느리 고령신씨(高靈申氏)도 피난 중 왜적을 만나 자결하여 일가 셋이 한 날 순절하였다. 1598년(선조 31) 통정대부(通政大夫) 승정원좌승지(承政院左承旨) 겸 경연참찬관(經筵參贊官)에 증직되고, 유씨 부인은 숙부인(淑夫人)으로 추증되었으며 며느리 고령신씨(高靈申氏)는 정려가 내려졌다. 그가 수집하여 간행하려다 뜻을 이루지 못한 성운의 문집은 1603년(선조 36) 아들 김덕민(金德民)이 유근(柳根) 등과 함께 '대곡집(大谷集)'으로 간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