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사고(師古). 호는 채진자(采眞子), 죽창(竹窓). 아버지는 운상(雲祥). 1585년(선조 18) 진사가 되고, 1595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이조정랑을 지냈다. 1604년 집의로 장흥병영(長興兵營)을 이전할 때, 뇌물을 받았다는 죄로 의금부에 투옥되었다가 곧 석방되었다. 즉, 강진에 있던 전라병영을 임진왜란이 끝난 뒤 지리의 편리에 따라 장흥으로 옮기자, 다시 강진으로 이전하기 위하여 장태백(張太伯) 이란 사람을 시켜 뇌물을 보내왔으나 이를 단호히 거절한 것이다. 이것이 말썽이 되어 3년 동안 억울하게 구금되어 여러 차례 고문을 받았다. 그뒤 누명이 벗겨지고 왕의 특명으로 석방되어 벼슬을 하지 않고 있다가, 1623년 인조반정 후에 다시 첨지중추부사가 되었다. 시문, 초서, 예서 및 서예에 뛰어났다. 저서로는 '죽창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