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사강(士强). 호는 외암(畏庵). 아버지는 홍도우후(洪道虞候) 옥청(玉淸)이다. 박순(朴淳)의 문인으로 성혼(成渾) 과도 교유하였다. 1567년(명종 22) 사마시에 합격하고, 1573년(선조 6) 성균관의 천거로 의금부도사가 되었다. 그뒤 사력(司歷), 사평(司評), 감찰을 거쳐 호조, 형조, 공조좌랑 및 정랑을 지냈고, 학행이 뛰어나 이이(李珥)의 천거를 받아 지평에 올랐다. 그 때 정릉(貞陵)의 복위를 주장하다가 외직으로 물러나 배천군수에 부임하였으나 병으로 사직하고 귀향하는 길에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