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이기준(李耆俊)
  • 전의이씨(全義李氏),  출생~사망 : 1555 ~ 1584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부선(孚先). 호는 부훤(負暄). 증조부는 이인손(李仁孫)이고, 조부는 경상절도사(慶尙節度使)를 지내고 병조참판(兵曹參判)에 추증된 이문성(李文誠)이며, 아버지는 함경북도절도사(咸鏡北道節度使)를 지내고 영의정(領議政)에 증직된 청강(淸江) 이제신(李濟臣)이다. 외조부는 상붕남(尙鵬南)이고, 광주김씨(光州金氏) 감역(監役) 김익휘(金益輝)의 딸이자, 판서(判書) 김개(金鎧)의 손녀와 혼인하여 아들 이중기(李重基)와 이후기(李厚基) 2남을 두었다. 1579년(선조 12) 기묘식년사마시(己卯式年司馬試)에 진사(進士) 3등으로 합격하고, 1580년(선조 13) 경진별시문과(庚辰別試文科)에 병과 1등으로 급제하여 승문원권지(承文院權知)에 보임된 후 부정자(副正字)에 이르렀다. 1583년(선조 16) 아버지 이제신이 경원부(慶源府)를 쳐들어 온 여진족 니탕개(尼湯介)를 막지 못한 죄로 투옥되자, 옥 근처에 집을 마련하여 옥바라지를 할 정도로 효성이 지극하였다고 한다. 1584년(선조 17) 29세의 나이로 사망하여 양근군(陽根郡) 서쪽 갑좌(甲坐)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