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강석기(姜碩期)
  • 금천강씨(衿川姜氏),  출생~사망 : 1580 ~ 1643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복이(復而). 호는 월당(月塘), 삼당(三塘). 이조참의 찬(燦)의 아들로, 큰아버지 순(焞)에게 입양되었다. 김장생의 제자로 1616년(광해군 8)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에 들어갔으나 시세에 불만을 품고 고향으로 돌아갔다가 인조반정 뒤 교리 등을 역임하고, 대사간, 대사성, 도승지 등을 거쳐서 1636년(인조 14) 이조판서에 올랐으며, 1640년에는 우의정에 세자부(世子傅)를 겸하였다. 부승지로 있을 때 딸이 소현세자빈(昭顯世子嬪)이 되었는데, 그뒤 강빈(姜嬪)은 심관(瀋館)에서의 영리(營利: 뇌물외교에 소요되는 자금을 마련하려는 것)로 인조의 불평과 역위(易位)를 꾀한다는 의심을 받던 중, 세자가 부왕에 의하여 독살된 뒤 강빈도 저주사건(역모)의 주모자로 모함되어 사사되었다. 그것을 ' 강빈의 옥'이라 하는데, 앞서 죽은 강석기는 관작을 추탈당하였고, 그의 부인은 처형되었으며, 아들 문성(文星)과 문명(文明)은 장살(杖殺)당하였다. 따라서, 그의 가문은 역적 집안으로 멸문의 화를 당했다가 숙종 때 복관(復官)되었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