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백춘(伯春). 호는 태천(苔泉). 사권(思權)의 아들이며, 성혼(成渾)의 문인이다. 1573년(선조 6) 진사가 되고, 1584년 별시문과에 장원하여 성균관전적을 지냈다. 사헌부감찰 때 서인 정철(鄭澈)의 일파라고 하여 안협현감으로 좌천되었다. 이때 기근이 들었으나 백성들을 잘 무휼하고 진안현감으로 전임되었는데, 재임중 기축옥사 때 정여립(鄭汝立)이 현계(縣界)로 들어오자 군사를 동원하여 정여립의 아들 옥남(玉男)을 잡아들였다.이 공으로 예조참의에 승진되고 평난공신(平難功臣) 2등에 책록되었다. 장례원판결사, 충주목사 등을 지내고, 1592년 임진왜란 때 황주목사로서 임진강을 지키다가 대가(大駕)를 따라 행재소(行在所)에 이르렀다.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다녀와서 천장문안관(天將問安官), 청주목사 등을 거쳐, 1598년 여양군(驪陽君)에 봉하여졌다. 1604년 주청부사(奏請副使)로서 또 명나라에 다녀와서 안변부사, 한성부좌윤 등을 역임하고, 1621년(광해군 13) 지중추부사가 되었다. 저서로는 '태천집'이 있다. 시호는 경정(景靖)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