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백준(伯俊). 호는 독송(獨松). 1584년(선조 17)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정언, 지평, 우부승지를 거쳐 이조참판, 형조참판을 지냈다. 임진왜란 때에는 비변사당상으로 활동하였고, 이듬해에는 병조참판을 거쳐 평안도병마절도사로 부임하였으나, 관내 철산군에 탈옥사건이 발생하여 그 책임으로 파직되었다. 1593년 다시 기용되어 밀양부사, 형조판서를 거쳐 특진관(特進官), 동지중추부사가 되었다. 1600년에는 호조판서를 거쳐 병조판서 겸 세자빈객이 되었다. 이어 함경도관찰사, 빙고제조(氷庫提調) 등을 역임하고 호성공신(扈聖功臣) 2등에 책록되고 평천부원군에 봉해졌으며, 1606년 개성유수를 끝으로 관직에서 물러났다. 죽은 뒤에 진천에 사당이 세워지고 사액되었으며,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충헌(忠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