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백유(伯瑜). 호는 경재(警齋). 아버지는 사재감첨정 수녕(遂寧)이다. 1528년(중종 23)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성균관박사, 호조좌랑, 진보현감(眞寶縣監), 기주관(記注官) 등을 거쳐, 1543년에 사예(司藝)가 되었다. 이듬해 장령으로서 기묘사화 때 화를 당한 조광조(趙光祖)의 신원을 상소하였으며, 1545년에는 교리, 봉상시정, 사간을 역임하였다. 중종이 죽고 인종이 즉위하자, 소윤과 대윤간의 세력투쟁이 첨예화하더니 마침내 소윤 윤원형(尹元衡)의 횡포가 심하자 관직을 포기하고 청도 운문산(雲門山)에 입산하였으나 을사사화 때 장살당하였다. 1568년(선조 1)에 관직이 환수되고 영천(永川)의 송곡서원(松谷書院)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