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권복시(權復始)
  • 안동권씨(安東權氏),  출생~사망 : 1556 ~ 1636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백원(伯元). 호는 구사재(九思齋) 권산해(權山海)의 5세손으로, 부친은 천사부장(天使部將)을 지낸 권녕(權寧)이다. 학행(學行)으로 봉직랑(奉職郞)에 이르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주 지역 향리 주민을 설득하여 의병을 모아 망우당(忘憂堂) 곽재우(郭再祐)를 따라 화왕산성(火旺山城)에서 회맹(會盟)에 참가하였다. 여러 차례 전공을 세웠다. 왜란이 평정되어 그에게 조봉대부(朝奉大夫) 사재감첨정(司宰監僉正)을 제수하였으나 나가지 않았다. 귀향하여 형산강 가에 구사재(九思齋)라는 서재를 짓고 여생을 보냈다. 또 고을의 풍속을 바로 잡기 위하여 상동서사(上洞書社)를 지어서 상동계안(上洞契案)을 만들고 여씨향약(呂氏鄕約) 및 주자향약(朱子鄕約)을 준수하니 모두 감화되었다. 이에 옥산서원(玉山書院)에서 '정속언해(正俗諺解)'와 '향약(鄕約)' 2책을 보내와 그를 장려하였다. 또한 그는 '구용구사(九容九思)'라는 군자의 생활신조가 되는 덕목을 만들어 향토 정화에도 힘쓰고 후진양성에 전념하다가 1636년(인조 14)에 80세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