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백승(伯昇). 호는 송만(松巒). 담수(聃壽)의 아들이며, 두수(斗壽)의 조카이다. 1564년(명종 19) 생원, 진사 양시에 합격하였으며, 1567년(선조 즉위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573년(선조 6)에 예조좌랑, 정언이 되었고, 이듬해 홍문관에 입번하여 김응남(金應南) 등과 함께 성락(成洛)을 잡아들이도록 청하였으나 허락받지 못하였다. 1576년 전랑(銓郞)에 이어 1578년 이조좌랑이 되었다. 동인 김성일(金誠一)과 함께 전랑이 되었으나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당시 서인의 거두인 작은아버지 두수, 근수(根壽)가 모두 요직에 있어 함께 삼윤(三尹)으로 일컬어졌으며, 서인을 지지하고 동인을 배척한다고 하여 사헌부, 사간원 등 언관들로부터 논핵을 자주 받았다. 진도군수 이수(李銖) 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김성일에게 논핵을 받은 적이 있으나, 오히려 김성일이 공정하지 못하다는 일부의 의론이 있었다. 1581년 안악군수로 있으면서 선정으로 포상을 받았으며, 뒤에 벼슬이 이조정랑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