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신광업(辛光業)
  • 영산신씨(靈山辛氏),  출생~사망 : 1575 ~ 1623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백술(伯述). 호는 구계(龜溪). 아버지는 팽년(彭年)이다. 1603년(선조 36) 진사가 되고, 1610년(광해군 2)에는 별시문과에 장원하였다. 1618년에 수찬, 교리를 거쳐 사간에 올랐다. 수찬으로 있을 당시 폐모에 대한 백관수의(百官收議)에서 '정의와 예의를 절충하면 은(恩)과 의(義)의 경중에 따라 스스로 대처할 바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대북당(大北黨)인 허균(許筠)의 심복이 되어 김개(金○)와 함께 폐모론에 동조하였다. 인조반정 후 옥사에 관련되어 귀양가서 위리안치(圍籬安置)되었다가 반역죄로 복주(伏誅)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