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김시성(金始聲)
  • 안산김씨(安山金氏),  출생~사망 : 1630 ~ 1707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문원(聞遠). 호는 도계(陶溪). 5대조 김필(金珌)은 1519년(중종 14) 기묘별시문과(己卯別試文科)에 장원급제하였으나, 1521년 신사무옥(辛巳誣獄)에 연루되어 겨우 죄를 면한 뒤부터는 거짓으로 미친 척 하면서 공적인 일에 관여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김희현(金希賢)이고, 아버지는 김재건(金在鍵)이며, 어머니 청주이씨(淸州李氏)는 이영휘(李英暉)의 딸이다. 21세에 향시(鄕試)에 합격하였고, 소과(小科), 대과(大科)의 복시(覆試)에는 여러번 낙방하였다. 시암(詩菴) 조상우(趙相禹)가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정학(正學)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시암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뜻이 고결하여 젊은 시절에 친하게 지냈던 조사석(趙師錫)이 이조판서(吏曹判書)가 되자 스스로 발길을 끊었다가, 1689년(숙종 15) 조사석이 세력을 잃게 되자 다시 교유하였다. 1703년(숙종 29) 관찰사(觀察使) 김연(金演)의 천거로 1705년(숙종 31) 광릉참봉(光陵參奉)에 제수되었으나 사양하고 벼슬하지 않았다. 1707년 5월 향년 78세로 세상을 떠나 그해 9월에 정안동(正安洞)에 장사지냈다. 부인 파평윤씨(坡平尹氏)는 통덕랑(通德郞) 윤평(尹○)의 딸로, 4남 1녀를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