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무회(无悔) 또는 수초(守初). 호는 우연(愚淵). 할아버지는 김언건(金彦健)이고, 아버지는 군자감정 김각(金覺)이며, 어머니는 상산김씨로 사성(司成) 김충(金沖)의 딸이다. 유성룡(柳成龍)을 사사하였으며, 이준(李埈), 정경세(鄭經世) 등과 학문적인 교류가 있었다.
1612년(광해군 4) 사마시에 합격, 성균관에 입학하였다. 이무렵 광해군의 난정으로 권세를 잡은 간신 이이첨(李爾瞻)을 탄핵하는 상소문을 올렸으나 관철되지 않자, 은둔할 생각으로 고향에 돌아갔다. 그뒤 이준, 정경세를 비롯하여 조찬한(趙纘韓), 강응철(康應哲) 등 당시에 뜻있는 선비들과 서로 수창(酬唱)하며 때를 기다리다가, 1623년 인조반정 후 경안찰방에 임명되었다. 그 이듬해 증광문과(增廣文科)에 합격, 성균관학유가 되고, 1625년(인조 3) 전적을 거쳐 형조좌랑이 되었다. 그뒤 병조좌랑 겸 춘추관기사관, 병조정랑 겸 춘추관기주관, 사복시첨정, 시강원문학, 사헌부장령, 부호군, 영천군수 등을 역임하고, 1635년 성균관 사예에 임명된 뒤 죽었다. 저서로는 '우연문집' 2권 1책이 있다.
1612년(광해군 4) 사마시에 합격, 성균관에 입학하였다. 이무렵 광해군의 난정으로 권세를 잡은 간신 이이첨(李爾瞻)을 탄핵하는 상소문을 올렸으나 관철되지 않자, 은둔할 생각으로 고향에 돌아갔다. 그뒤 이준, 정경세를 비롯하여 조찬한(趙纘韓), 강응철(康應哲) 등 당시에 뜻있는 선비들과 서로 수창(酬唱)하며 때를 기다리다가, 1623년 인조반정 후 경안찰방에 임명되었다. 그 이듬해 증광문과(增廣文科)에 합격, 성균관학유가 되고, 1625년(인조 3) 전적을 거쳐 형조좌랑이 되었다. 그뒤 병조좌랑 겸 춘추관기사관, 병조정랑 겸 춘추관기주관, 사복시첨정, 시강원문학, 사헌부장령, 부호군, 영천군수 등을 역임하고, 1635년 성균관 사예에 임명된 뒤 죽었다. 저서로는 '우연문집' 2권 1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