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명원(明遠). 호는 청천(淸川). 아버지는 천복(川福)이며, 어머니는 곽회영(郭懷英)의 딸이다. 1602년(선조 35) 알성문과에 갑과로 급제, 1604년에 감시관(監試官)으로 있다가 정원(政院) 으로부터 탄핵, 추고받았다. 1605년 형조좌랑에 임명되고, 이듬해 정월 예조좌랑에 이르렀다. 3월에 황해도사로서 사간원 으로부터 위인이 용졸(庸拙)하다 하여 체차되었지만 곧 사헌부감찰이 되었다. 그뒤 공조좌랑, 호조좌랑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수령으로 있으면서 위인이 혼열(昏劣)하고 탐비(貪鄙)하여 여러번 탄핵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