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1년(중종 16)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예문관검열이 되었고, 이어서 홍문관정자가 되었다가 저작, 박사 등을 역임하고, 1523년 사가독서(賜暇讀書) 한 뒤에 이듬해 정언이 되었다. 이어 문학, 검상을 거쳐 장령이 되었고, 1533년 당성위(唐城尉)의 옥사에 관련되었다는 무고를 받고 유배되었다가 1537년 김안로(金安老)가 사사(賜死)되자 풀려났다. 1542년 응교가 되고, 동부승지를 거쳐 이듬해 충청도관찰사가 되었으며, 1545년(명종 즉위년) 명종이 즉위하자 판결사를 지낸 뒤 공조참의가 되었다.
1521년(중종 16)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예문관검열이 되었고, 이어서 홍문관정자가 되었다가 저작, 박사 등을 역임하고, 1523년 사가독서(賜暇讀書) 한 뒤에 이듬해 정언이 되었다. 이어 문학, 검상을 거쳐 장령이 되었고, 1533년 당성위(唐城尉)의 옥사에 관련되었다는 무고를 받고 유배되었다가 1537년 김안로(金安老)가 사사(賜死)되자 풀려났다. 1542년 응교가 되고, 동부승지를 거쳐 이듬해 충청도관찰사가 되었으며, 1545년(명종 즉위년) 명종이 즉위하자 판결사를 지낸 뒤 공조참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