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덕휘(德輝). 호는 석포(石圃). 참봉(參奉) 강근우(姜謹友)의 증손이자 우승지(右承旨) 강삼(姜參)의 손자이며 아버지는 강위표(姜渭彪)이다. 1591년(선조 24) 신묘식년사마시(辛卯式年司馬試) 생원 3등에 합격하고 1624년(인조 2) 갑자식년문과(甲子式年文科)에 병과 1등으로 급제하여 관직이 승지(承旨)에 이르렀다. 1608년(선조 41)과 1616년(광해군 8) 가을에 기축옥사(己丑獄死)에 연루된 이발(李潑), 이교(李矯), 정개청(鄭介淸), 유몽정(柳夢井), 조대중(曺大中) 5인이 억울하게 죄를 받았음을 상소(上疏)하였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진경문(陳景文), 오정남(吳挺男)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