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덕윤(德允). 고려 시대 병부상서(兵部尙書) 태자태사(太子太師) 은열공(殷烈公) 강민첨(姜民瞻)의 후손으로, 통훈대부(通訓大夫) 북청판관(北靑判官) 강자위(姜自渭)의 아들이다. 그의 선대(先代)는 대대로 온양(溫陽)에서 살았으나 그의 대(代)에 와서 회덕현(懷德縣) 자운동(紫雲洞) 한사산(寒寺山, 대덕구 석봉동 한절구지 일대) 일대로 이주하여 살게 되어 입향조(入鄕祖)가 되었다. 연산현감, 사복시정(司僕寺正), 가선대부(嘉善大夫) 행동지중추부사(行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1681년에 추보된 '회덕향안(懷德鄕案)'에는 향원으로 수록되어 있는데 진주강씨 로는 최초의 인물이다. 슬하에 7남 4녀를 두었다. 묘소는 회덕 자운동 한사산에 있고, 1949년에 후손 강면식(姜冕植)이 찬(撰)하고 강인환(姜仁煥)이 쓴 묘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