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덕수(德○). 종우(宗遇)의 아들이다. 1650년(효종 1) 증광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1664년(현종 5) 양산군수로 병서(兵書) '연기신편 演機新編'을 저술하여 척계광(戚繼光)의 병제는 구제(舊制)이므로 신병제로 개편할 것을 원하였으나 채택되지 않았다. 1668년 서천군수를 지내고 1671년 연서찰방(延曙察訪), 다음해에 장연부사, 인동부사를 역임하였다. 1678년(숙종 4) 우통례(右通禮)로 병사(兵事)에 관한 상소로 군제개혁을 요구한 바 있으며, 이어 봉상시정(奉常寺正)이 되었다가 1680년 경신대출척으로 변방에 유배되어 배소에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