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송시담(宋時倓)
  • 은진송씨(恩津宋氏),  출생~사망 : 1605 ~ 1662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대이(大而). 호는 부훤당(負暄堂). 할아버지는 도사(都事) 송응기(宋應期)이고, 아버지는 습정공(習靜公) 송방조(宋邦祚)이다. 어머니 진주정씨(晉州鄭氏)는 정곡(鄭谷)의 딸이다.

큰형 충현공(忠顯公) 송시영(宋時榮)은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왕명에 따라 강화도의 분사(分司)에 들어갔으나, 강화성이 함락되자 김상용(金尙容) 등과 함께 자결하였다. 후에 정문(旌門)이 세워지고 좌찬성(左贊成)에 증직되었다. 중형 송시형(宋時瑩)은 1633년(인조 11) 계유식년사마시(癸酉式年司馬試)에 진사(進士) 2등으로 합격하였고, 사림(士林)의 영수(領袖)가 되었다. 아버지가 죽은 후 큰형 송시영과 중형 송시형에게 과거에 필요한 과정을 배웠다. 여러번 향시(鄕試)에는 합격하였으나 사마시(司馬試)에는 실패하였다. 1636년(인조 14) 큰형이 강화도에서 순절하자 벼슬할 뜻을 접었다. 예산(禮山) 술곡리(述谷里)에 집을 짓고 살다가 1662년(현종 3) 향년 57세로 세상을 떠났다. 전처는 현감(縣監) 황수(黃수)의 딸이고, 후처는 정종(定宗)의 후예 사인(士人) 이융(李隆)의 딸이다. 두 부인 모두에게서 아들을 두지 못하여서 중형의 아들 송기항(宋基恒)을 양자로 들여 송명석(宋命錫)과 송경석(宋慶錫)을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