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양홍주(梁弘澍)
  • 남원양씨(南原梁氏),  출생~사망 : 1550 ~ 1610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대림(大霖). 호는 서계(西溪). 조부는 첨정(僉正) 양응곤(梁應鯤)이고, 아버지는 이조참판(吏曹參判)을 지낸 양희(梁喜)이다. 현감 이사민(李師民)의 딸과 혼인하여 2남 4녀를 두었다. 우계(牛溪) 성혼(成渾)과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자 큰 아들 양황(梁榥)과 함께 파천한 어가(御駕)를 쫓아 곡물과 화살 등의 물품을 바쳤다. 당시 의병장으로 활약한 정인홍(鄭仁弘)과는 매서(妹壻)관계였으나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으로 전한다. 환도(還都) 후 조정에서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직을 내렸으나 받지 않았다. 이후 전란 때의 공으로 여러 차례 관직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였다. 선조(宣祖) 말에 정인홍이 실권을 잡아 성혼(成渾)을 비판하자, 이를 비판하며 정인홍을 공격하였다. 1603년(선조 36) 장문의 상소를 올려 정인홍을 탄핵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610년(광해군 2) 9월 22일 향년 61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