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남로(南老). 대사간(大司諫) 낙봉(駱峯) 유헌(柳軒)의 자손으로 할아버지는 수원부사(水原府使) 유영건(柳永健) 이고 아버지는 선전관(宣傳官) 유익(柳○ª)이다. 어머니는 정종(定宗)의 5대손 이억희(李億禧)의 딸이다. 어려서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간이(簡易) 최입(崔○)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광해군(光海君) 때에 과거를 포기하고 경학(經學)에 힘써 선비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맏형이 모함을 받아 국문을 받게 되자, 맏형과 함께 진주(晉州)로 내려가 소박한 삶을 살았다. 향년 79세로 죽어 진주 용봉리(龍鳳里) 방어산(防禦山)에 장사지냈다. 부인 이씨는 진사(進士) 이승벽(李承璧)의 딸이자, 태종(太宗)의 아들 근영군(謹寧君) 이농(李○)의 후손이다. 자녀로는 1남 2녀를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