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신희남(愼喜男)
  • 거창신씨(居昌愼氏),  출생~사망 : 1517 ~ 1591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길원(吉遠). 호는 영계(瀯溪). 아버지는 우장(友張)이며, 어머니는 평시령(平市令) 김제(金濟)의 딸이다. 이이(李珥), 박순(朴淳) 등과 교유하였다. 1543년(중종 38) 진사시에 합격한 뒤 선무랑(宣務郞)이 되고, 1555년(명종 10) 선교(宣敎)로서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70년(선조 3) 수찬, 장령 등을 거쳐, 종부시정이 되어 '명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이어 부교리, 사간, 교리, 집의, 좌승지 등을 지내고, 1576년 강원도관찰사로 나갔다가 병조, 예조의 참의를 역임하였다. 1581년 당시 극심한 동, 서의 붕당을 싫어하여 자청해서 금산군수로 나갔다가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내려가 여생을 마쳤다. 성품이 후덕하고 근면, 온화하였으며, 시와 글씨에 뛰어나 한호(韓濩)에게 서예를 가르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