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국이(國耳). 호는 필재(○齋), 잠소당(潛昭堂). 생원 인(璘)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장유성(張有誠)의 딸이다. 1519년(중종 14) 형 광좌(光佐)와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그해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상처를 입고 옷을 찢어서 머리를 싸매고 정부외랑(政府外廊)에 앉아서 당시 나이 젊고 글씨에 능한 참판 이찬(李澯)과 첨지 김로(金魯)에게 붓을 잡게 하고 자신이 신원소를 불러 쓰게 하였는데, 그 문사(文詞)가 용솟음치듯 함으로써 그의 절의와 문장을 나타내었다. 1525년 식년문과에 장원, 1536년 재령군수로서 문장에 능하여 원접사(遠接使)를 수행하였고, 1545년 사간이 되었으나 을사사화로 하옥, 이어 동선역(洞仙驛)에 유배되어 죽었다. 일찍이 조광조(趙光祖)와 교분이 있었으며, 뒤에는 이언적(李彦迪)과 같이 화를 당하였으니 그의 사상과 절의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뒤에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청주의 송천서원(松泉書院)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정절(貞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