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구부(懼夫). 호는 지족암(知足庵). 아버지는 부사용(副司勇) 희림(希琳)이며, 어머니는 수안군수 박준산(朴峻山)의 딸이다. 영의정 두수(斗壽)의 아버지이다. 12세에 고아가 되어 처음에는 유운(柳雲)에게 수학하다 조광조(趙光祖)의 문인이 되었다. 1519년(중종 14)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이해 기묘사화가 일어나 조광조가 투옥되자 성균관 유생들과 함께 그의 무죄를 호소하였다. 1522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때 그를 기묘당인(己卯黨人)이라 하여 배격하는 자가 있었으나 성균관학유가 되었다. 그뒤 봉상시참봉, 의정부사록을 거쳐 1526년 사헌부감찰, 호조좌랑에 임명되고, 이듬해 해남현감, 충청도사에 이어 형조정랑, 사복시부정, 군자감정을 거쳐 1544년 삼척부사를 지냈다. 저서로는 '지족암집' 1책이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