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이경중(李敬中)
  • 전주이씨(全州李氏),  출생~사망 : 1542 ~ 1585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공직(公直). 호는 단애(丹崖). 종실(宗室) 계양군(桂陽君) 증의 4대손이며, 금천수(錦川守) 감의 아들이다.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1568년(선조 1)에 성균관의 유생으로 들어갔으며, 1570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홍문록에 선임되고, 1574년 홍문관정자에 이어 저작, 정언을 역임하였다. 1581년 이조좌랑으로 있을 때 정여립(鄭汝立)이 당시 명망이 있음을 보고 극력 배척하며 청현(淸顯)의 자리에 두지 말라고 논책하였다가 도리어 정인홍(鄭仁弘), 박광옥(朴光玉), 정탁(鄭琢) 등 동인의 언관들로부터 논핵(論劾)당하여 파직되었다. 뒤에 응교를 거쳐 1584년 집의에 이르렀으나 대사헌 정철(鄭澈) 과의 불화로 경상도 추쇄어사(推刷御史)로 좌천되었다가 밀양에서 병사하였다. 그뒤 1589년 정여립이 모반하여 패사하자 유성룡(柳成龍)이 경중의 예견이 사실화되었음을 상소하여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