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공간(公幹). 호는 감수재(感樹齋). 함양 출신. 승사랑(承仕郞) 현좌(賢佐)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합천이씨(陜川李氏)로 충순위(忠順衛) 숙(淑)의 딸이다. 노상(盧祥)의 문인이다. 1600년(선조 33) 별시문과에 급제한 뒤 예문관검열을 거쳐, 예조, 병조, 형조의 낭관과 북청판관에 이어 1608년 사간원정언, 세자시강원문학 등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 때 곽재우(郭再祐)가 의병을 일으킨다는 소문을 듣고 격문을 돌려 많은 지원을 하였고, 정유재란에는 의병으로 황석(黃石)에 들어가 여러 고을에 통문을 돌려 군량을 조달하였다. 평생을 성리학과 '대학'의 무자기(毋自欺)에 심혈을 기울였고, 정온(鄭蘊), 오장(吳長), 박이장(朴而章), 박성인(朴成仁) 등과 교유하였다. 1613년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저서로는 '감수재문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