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계보(啓甫). 호는 곤재(困齋). 문정공(文貞公) 송애(松崖) 김경여(金慶餘)의 증손으로, 조부는 안음현감(安陰縣監)을 지내고 이조참의(吏曹參議)에 증직된 김진수(金震粹)이다. 아버지는 조부와 마찬가지로 현감을 지내고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증직된 김명석(金明錫)이다. 외조는 박시위(朴時瑋)이고, 처부는 심징(沈○)이다. 일찍이 돈령부도정(敦寧府都正)을 지낸 중부(仲父) 김창석(金昌錫) 에게서 학문을 익혔다. 1713년(숙종 39) 계사증광사마시(癸巳增廣司馬試)에 진사(進士) 3등으로 합격하여 정릉참봉(貞陵參奉)을 거쳐 사포서봉사(司圃署奉事)와 공조정랑(工曹正郞) 및 은진현감(恩津縣監) 등을 지냈다. 1733년(영조 9) 계축식년문과(癸丑式年文科) 갑과(甲科) 3등으로 급제하여 승정원승지(承政院承旨), 경주부윤(慶州府尹), 강원도(江原道), 충청도관찰사(忠淸道觀察使) 등을 지냈다. 1747년(영조 23) 67세의 나이로 회덕현(懷德縣)에서 사망하여, 연기군(燕岐郡) 동면(東面) 앵암리 김경여의 묘역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