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구봉서(具鳳瑞)
  • 능성구씨(綾城具氏),  출생~사망 : 1597 ~ 1644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경휘(景輝). 호는 낙주(洛洲). 아버지는 군수 계(棨)이다. 장단의 낙하(洛河)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고, 권필(權○) 에게서 시를 배웠다. 1617년(광해군 9) 생원시에 2등으로 합격하고, 1624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을 거쳐 홍문관수찬을 역임하고 사간원정언이 되어 반정공신에 아무 공 없이 오른 사람들을 깎아내릴 것을 강력히 주청하였다. 1631년 수찬을 거쳐 이조좌랑이 되어 박지계(朴知誡)가 주장한 인조의 사친추숭(私親追崇)을 반대하다 체직되었다. 얼마 뒤 사가독서 하고 홍문관응교, 승지를 거쳐 병조참의가 되었다가 대간의 탄핵을 받아 서천군수, 나주목사를 거쳐 1638년 전라도관찰사가 되었다. 이어 경상도관찰사를 재임하고 호조참의가 되어 비변사제조(備邊司提調)를 겸하였다. 이때, 이계(李○)가 조선과 명나라가 밀통한 사실을 청나라에 고변하여 사세가 급박해지자 사태를 잘 마무리하고, 아울러 이계를 붙잡아 급히 참수하여 후환을 없앴으며, 또 청나라에 붙어 권력을 휘두른 정명수(鄭命壽)를 믿고 횡포를 부리던 종제를 목베어 기개를 세상에 떨쳤다. 평안도관찰사로 재직중 임지에서 죽었다. 사람됨이 강직하였으며, 재치가 있었고, 권력에는 추호도 아부하려 함이 없었다. 그 재치가 청나라 와의 외교에서 마찰을 줄여 인조 로부터 한때 제일의 신하로 신임을 얻었다. 시호는 경헌(景憲)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