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경질(景質). 호는 동고(東皐) 또는 국재(菊齋). 증조할아버지는 모양군(牟陽君) 이직(李稙)이고, 할아버지는 선사정(仙槎正) 이승손(李承孫)이며, 아버지는 하동령(河東令) 이유(李)이다. 어머니는 유곤원(柳坤元)의 딸이다. 신당령(神堂令) 이정(李禎)에게 입양되었다. 동생으로 대사간을 역임한 이희득(李希得)이 있고, 아들은 '지봉유설(芝峯類說)'을 지은 이수광(李睟光)이다.
1546년(명종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학유, 정랑, 교리 등을 거쳐 승지, 오위장을 지내고 사간에 이르렀다. 이때 왕실의 인척임을 기화로 횡포를 부리는 이량(李樑)을 탄핵하였다가 도리어 장단부사로 좌천되었으나 드디어 이량이 쫓겨나게되자 다시 우승지에 제수되었다. 1572년(선조 5) 진하부사(進賀副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어 병조참의, 대사헌을 거쳐 호조, 형조, 병조의 판서를 지내고, 지경연사(知經筵事)를 지냈다. 저서로는 '동고집'이 있다.
1546년(명종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학유, 정랑, 교리 등을 거쳐 승지, 오위장을 지내고 사간에 이르렀다. 이때 왕실의 인척임을 기화로 횡포를 부리는 이량(李樑)을 탄핵하였다가 도리어 장단부사로 좌천되었으나 드디어 이량이 쫓겨나게되자 다시 우승지에 제수되었다. 1572년(선조 5) 진하부사(進賀副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어 병조참의, 대사헌을 거쳐 호조, 형조, 병조의 판서를 지내고, 지경연사(知經筵事)를 지냈다. 저서로는 '동고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