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경인(景仁). 호는 기암(棄庵). 정(霆)의 아들이다. 1539년(중종 34) 별시문과에 병과 2인으로 급제한 뒤 문한관(文翰官)을 거쳐 장령, 승문원판교를 역임하고 예조정랑에 올랐는데, 1547년(명종 2) 양재역벽서사건(良才驛壁書事件)에 연루되어 양구에 부처되었다. 이때 관문에 출입하였다 하여 형문(刑問)을 받고 다시 강진으로 귀양갔고, 1570년(선조 3) 회양에 옮겼다가 석방되어 직첩을 돌려받았다. 윤원형(尹元衡)의 비행을 논하다가 화를 입게 되었는데, 평소 직언을 잘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