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경앙(景仰). 호는 남천(南川). 영주 출신. 아버지는 장악원주부 유년(有年)이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나 이름이 높았다. 1572년(선조 5) 친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교서관에 임명된 뒤 검열 등을 거쳐 1586년 형조정랑, 청도군수 등을 지냈다. 1592년 창평군수가 되었으나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들 주(○´)와 함께 적에게 잡히게 되었다. 적 가운데 있으면서 적의 정세를 세밀히 탐지해 관군에게 알렸는데, 이때의 일을 기록한 것이 '호구일록 虎口日錄'이다. 원주에 이르렀을 때 깊은 밤을 이용하여 아들과 함께 탈출하였다. 이듬해 행재소에 이르러 봉상시주부가 되었고, 환도 후 군자시첨정(軍資寺僉正)을 거쳐 예천, 진산, 영천, 금산 등의 수령이 되었다. 1602년에 사섬시정을 거쳐 간성(杆城)의 수령을 지내고 내자시정, 통례원 정을 역임하였다. 책 읽기를 좋아하여 많은 서적을 수장하였으며 여러 책을 교수(校讐)하고 주석을 달았다. 저서에는 '남천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