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강호(姜鎬)
  • 진주강씨(晋州姜氏),  출생~사망 : 1605 ~ 1667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경숙(京叔). 증조부는 영의정에 추증된 강운상(姜雲祥)이고, 조부 강첨(姜籤)은 사간(司諫), 장예원판결사(掌隷院判決事), 홍문관부제학(弘文館副提學)을 지냈고, 아버지 복천(復泉) 강학년(姜鶴年)은 사예(司藝), 사업(司業) 등을 지내고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추증되었다. 외조는 이덕기(李德沂)이고, 처부는 윤지경(尹知敬)이다. 전라남도 화순에서 태어났다. 1635년(인조 13) 을해증광사마시(乙亥增廣司馬試) 생원(生員) 3등에 합격하고, 1642년(인조 20) 임오식년문과(壬午式年文科)에 병과(丙科) 12등으로 급제하였다.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 문학(文學)을 역임하고 1655년(효종 6) 장령(掌令)과 헌납(獻納)을 거쳐 서장관(書狀官)으로 청에 다녀왔다. 1657년(효종 8) 세자시강원필선(世子侍講院弼善)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1660년(현종 1) 다시 장령이 되었다. 1665년(현종 6) 길주목사(吉州牧使)에 발탁되고, 1668년(현종 9) 승지(承旨)가 되었으며 이듬해 1669년 원양도관찰사(原壤道觀察使)에 제수되었다. 죽은 뒤 증직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 이조참판(吏曹參判) 겸 동지경연의금부춘추관성균관사(同知經筵義禁府春秋館成均館事), 오위도총부부총관(五衛都摠府副摠管)에 추증 되었다. 묘는 현재 부친 강학년과 함께 온양(○釀) 서봉동(捿鳳洞)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