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박태원(朴泰遠)
  • 반남박씨(潘南朴氏),  출생~사망 : 1660 ~ 1722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경구(景久). 호는 회와(悔窩), 일우(一愚), 송담(松潭). 부승지 세성(世城)의 아들이다. 1689년(숙종 15) 진사가 되고, 같은해 기사환국으로 인현왕후(仁顯王后)가 폐위되자 성균관 유생들을 이끌고 이를 적극 반대하였다. 1697년 휘릉참봉(徽陵參奉)을 거쳐 부평현감(富平縣監), 황주목사(黃州牧使) 등을 역임하였다. 특히, 1704년 부평에 있는 민진표(閔震標)의 땅을 강제로 빼앗아 자기 처의 장지(葬地)로 삼고, 이를 반대하는 민진표를 협박하여 자결하게 하였다는 이유로 탄핵당하였다. 1721년 합천군수(陜川郡守)로 나아가 다음해 죽었다. 저서로는 '반남박씨오세유고 潘南朴氏五世遺稿' 인 시문집이 있다. 뒤에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