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아버지는 찰방 권애(權涯)이다. 1630년(인조 8) 진사가 되었으며, 성균관에 들어가 수업중 동료들과 함께 이이(李珥), 성혼(成渾)의 문묘제향을 상소하였다. 1636년 희릉참봉(禧陵參奉)이 된 뒤 여러 관직을 거쳐 선산부사를 역임하였다. 당시 이언적(李彦迪), 이황(李滉)의 문묘제향을 반대했던 정인홍(鄭仁弘)의 주장이 다시 대두되자 다섯 차례에 걸쳐 상소를 올려 그 타당함을 주장하였다. 초명은 기원(起源), 자는 호연(浩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