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이의활(李宜活)
  • 여주이씨(驪州李氏),  출생~사망 : 1573 ~ 1627
조선 중기의 문신, 학자. 자는 호연(浩然). 호는 설천(雪川). 경주 출생. 언적(彦迪)의 손자로, 판관에 추증된 응인(應仁)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옥산장씨(玉山張氏)로 세마(洗馬) 응기(應機)의 딸이다. 1610년(광해군 2) 성균관에 들어가 수학하고, 2년 뒤에 진사시에 합격하여 호조좌랑을 거쳐 감찰이 되었다가 고령현감을 역임하였다. 1618년 증광시에 급제하여 전적을 지내고 함경도사로 나갔다. 1620년 이이첨(李爾瞻) 등이 전횡을 하게 되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였다. 1623년(인조 1) 반정이 성립되어 흥해군수에 발탁되었는데, 지나간 폐정을 바로잡고 백성을 진휼하여 선정을 베풀었으며 탐관오리의 부정을 근절하였다. 1627년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주야로 집무하다가 병을 얻어 군청에서 순직하였다. 저서로는 '설천문집' 4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