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김수인(金壽仁)
  • 안동김씨(安東金氏),  출생~사망 : 1608 ~ 1660
조선 중기의 문신, 서예가. 자는 원보(元甫).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 김극효(金克孝)의 증손으로 문충공(文忠公) 김상용(金尙容)의 손자이고, 이조참판(吏曹參判) 김광현(金光炫)의 아들이다. 부인은 창녕성씨(昌寧成氏)이며, 현감(縣監) 성홍헌(成弘憲)의 딸이다.

1634년(인조 12) 음보로 선공감역(繕工監役)에 제수되어, 옥책문(玉○文)을 감조(監造)하였고, 이어 전생서주부(典牲署注簿), 사복시부정 등을 지냈다. 1636년 병자호란 때에는 상원현감으로 재직하면서 토산싸움에서 소수의 병력으로 적의 대군과 싸워 많은 공을 세우고 부상당하였다. 그뒤 증산, 의흥, 창녕 등지의 현감을 역임하였다. 효종이 그 무재와 방략(方略)을 알고 특별히 양주목사로 임명하고, 얼마 뒤 수원부사로 방어사(防禦使)를 겸임하게 하고 갑옷을 하사하였다. 병자호란 때의 부상으로 몸이 쇠약해져 관직을 버리고 보령의 모도(茅島)에서 일생을 마치려고 하였으나, 부모의 봉양을 위해 익산군수로 재직하던중 1960년(현종1) 6월 19일 53세로 죽었다. 어려서부터 성격이 엄하여 어른스러운 기량이 있었으며, 시끄러운 경쟁을 싫어하고 조용히 방안에서 학문을 즐겼다. 서예에도 뛰어나 전서, 예서 등을 잘 썼다. 후에 손자 김시걸의 공(功)이 커서 이조참의(吏曹參議)에 추증(追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