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김주우(金柱宇)
  • 안동김씨(安東金氏),  출생~사망 : 1598 ~ 1644
조선 중기의 문신, 서예가. 자는 만고(萬古). 호는 이면(易眠). 아버지는 승지 김중청(金中淸)이다. 부인은 숙부인(淑夫人) 연안이씨(延安李氏)이며, 증 우의정 이경암(李景巖)의 딸이다.

1603년 15세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1624년 정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전적을 제수받았다. 이듬해 정언이 되었으나, 그의 아버지가 광해군 때 국가에 곡식을 바치고 벼슬을 산 신하라 하여 간원에서 심히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김류(金瑬)의 적극적인 추천에 의해 정언이 되었으며, 그뒤 지평이 되었다.

1627년 정묘호란 때 왕의 강도파천(江都播遷)에 따라가지 않았다고 하여 탄핵을 받았다. 1632년 경성판관(鏡城判官)으로 있을 때, 온 집안이 큰 변을 만나 숙부가 옥에 갇히고 할아버지는이 때문에 자살하였으며, 그도 사헌부의 탄핵을 받고 체직되었다.

서예에 명망이 있어 13세에 진주 촉석루의 액(額)을 썼으며, 1625년에 왕명으로 동궁의 대병(大屛)에 사잠(四箴)을 쓰기도 하였다. 인조는 즉위하기 전부터 그의 재질을 알고 발탁하여 쓰고자 했으나, 아버지와 숙부의 정치적 성향 때문에 하급직에 머물고 말았다.

1644년(인조22) 갑신(甲申) 1월 24일 47세로 졸하였다. 묘(墓)는 공주시 유천면 정림후산 대동마을(현 대전시 정림동)이다.